결코 가득 차지 않는 道라고 불리는 藥을 활용하는 묘법
제4장 無源 무원
도는 텅 빈 그릇이지만
그 무엇을 담아도 가득 차는 법이 없구나
헤아릴 수 없이 깊어서 만물의 조종이라 하리
도는 그 날카로움을 무디어지게 하고
얽히고설킨 것을 푸는구나
빛과 융화하지만 먼지와도 하나가 되나니
도는 한없이 맑아서 존재하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렵네
나는 그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없어라
다만 그 어떤 것보다도 먼저 존재했으리라 여길 뿐
道沖而用之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도충이용지혹불영 연혜사만물지종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湛兮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담혜사혹존 오부지수지자 상제지선
<도덕경> 제4장은 무원無源, 즉 무의 근원이라 이름
붙은 장이다. 도를 그릇으로 비유하자면 그 어떤 용도
로 쓰든지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지
만 신비스럽게도 그 그릇은 가득 차는 법이 없다. 늘
스스로 비움을 실천하여 가득 차서 더 이상 못 쓰게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도라는 그릇’의 묘용妙用에서 비
움의 쓰임새를 체득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늘 사용해도 항시 비어 있으므로 그 깊이를 측량할
수조차 없이 깊은지라 만물의 조종이라 하겠고 한없
이 맑고 투명한지라 그것이 존재하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렵다. 누가 낳았는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마도 보
이는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보다 더 먼저 존재했을 것
으로 판단된다.
“도는 그 날카로움을 무디어지게 하고 먼지와도 하
나가 된다”는 구절은 앞뒤 문맥의 흐름상 이곳에 있을
문장이 아니라고 판단해 이 부분을 제외시키는 학자
들이 더러 있기도 하지만 그대로 두든, 빼든 모두 도
의 다양한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이요, 시도인 만
큼 전체적인 큰 흐름을 달라지게 할 내용은 아니라 판
단된다.
근래에 들어 양·한방 통합의학을 추구하고 대체의
학을 활용하는 의료인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이
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세계 각처의 유용한 의방醫方
을 두루 공부한 뒤 직접 그러한 방식의 활용을 통해
환자를 돌보는 현직 의료인이자 의학자의 저서가 출
간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그 저서 제목이 바로
<비우고 낮추면 반드시 낫는다>이다. 배고픈 시절의
망령에서 아직껏 벗어나지 못하고 음식의 질을 굳이
따질 것도 없이 끝없이 배를 채우려 하거나 주요 정
보가 특정집단에 의해 독점되던 시절에 그럴듯한 온
갖 지식을 주워담아 자신의 두뇌를 채우려고 하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이 화두話頭는 그래서 무척이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선다.
자연치유를 추구하는 이 건강지침서의 저자는 광
주에서 통합의학 클리닉을 개원하여 환자들을 진료
하면서 조선대학교 보건대학원 대체의학과 초빙교
수, 한국통합의학 포럼 상임대표, 굿뉴스의료봉사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는 외과의사 전홍준 박사이다.
그는 1970년대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1984년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운영하는 자연치료센터에서
야채·과일·절식, 침술·명상 등 동양전통의학과 유
사한 치료를 하는 것을 목격하고 새로운 의학에 눈
뜨게 된다. 1980년대 후반에 일본과 미국으로 건너
가 자연치료와 심신의학을 배우고 인도의 전통의학
아유로베다 전 과정을 공부한 뒤 모든 의학을 통합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인치유의학을 추구하고
있는 의료인이다.
이 책은 크게 ‘자연을 따르면 저절로 낫는다-몸의
치유’ ‘생각을 바꾸면 낫는다-마음의 치유’ ‘비우고 낮
추면 생명이 보인다-몸·마음·영성의 치유’ ‘자연치
유를 추구하는 세계의 의사들’ ‘만성질환과 난치병,
이렇게 하면 낫는다’로 구분 지어 임상 경험을 통해
체득한 의방과 세계 각국 의료인의 자연치료법을 알
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전홍준 박사에 대해서 우리 의료계는 대체로 ‘이
상한 의료인’으로 보는 경향이 짙은 데 반하여 국회
의원 시절에 한국고전번역원법을 발의하여 고전번
역자 양성기관이자 고전번역기관인 재단법인 민족
문화추진회를 법적 기관인 한국고전번역원으로 거
듭나게 한 주인공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삶의
방식을 자연의 질서에 맞추면 병은 저절로 낫는다’고
말하는, 다시 말해 ‘천리天理에 따르는 의사를 누가 감
히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전제한 뒤 한
마디로 “이상한 의사가 아니라 가장 정상적인 의사”
라고 평했다.
굳이 노자老子가 제시한, 비움(虛)을 비롯하여 인위
人爲, 인공人工을 배제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지고한 철학
적 가치와 의학적 효용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현대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많은 난치성 질병의
발생 원인을 차지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질적으로 심
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온갖 종류의 불량식품과 합
리성이 결여된 억지 논리나 지식의 문제를 깊이 고려
해 볼 때 ‘비움’이라는 화두는 어쨌든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중요 이슈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달이 차면 이지러지듯이 만물 역시 태어나 성장을
거듭하다가 성장의 한계에 다다르면 쇠퇴 일로를 걷
게 된다. 어릴 적에 즉 유약柔弱할 때에는 무리無理하는
일없이 지내다가 자라면서 청장년기를 맞게 되면 올
챙이 적 생각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제 가진 역량의
몇 배를 쓰면서 무리에 무리를 거듭해 뒷날의 질고재
액疾苦災厄을 자초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의 일반적
인 모습 아닌가?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 선생의 제자 박영호 다석사상
연구위원은 <빛으로 쓴 얼의 노래 老子>라는 저서를
통해 “도는 그 날카로움을 무디어지게 한다”는 구절
에 대해 다석 선생의 가르침을 인용해 독특한 해설을
곁들여 이해를 돕고 있다.
“제나(자아)는 짐승이라 사납기 그지없다. 나 아我
자는 군데군데 이 빠진 쌍날 창을 그린 것이다. 그래
서 사람들은 만났다 하면 싸우려 든다. 이것은 사람
이 공격 본능인 진嗔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오죽했으
면 쇼펜하우어가 ‘인간은 약하다. 인간은 인간을 잡
아먹는 승냥이다’라고 하였겠는가. 재산을 빼앗고
자(貪),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瞋), 여인을 빼앗기 위
하여(痴) 살생을 저지른다. 그런 자아自我인데 하느님
의 얼(道)을 받으면 그 날카로움이 무디어진다(挫其
銳). 비폭력 무저항주의자 마하트마 간디가 바로 그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다.”
이어 ‘빛과 융화되지만 먼지와도 하나가 되나니’라
는 구절에 대한 설명에서도 세상 학자들의 일반적 논
리와는 크게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화기광 동
기진은 예수, 석가, 톨스토이, 간디와 같이 화광의 진
리정신과 동진의 서민정신의 극치를 말한다. 맘은 얼
의 빛에 화합하여 짐승의 성질을 죽인 것이 화기광和
其光이다. 또 몸은 티끌과 함께하여 가르치거나 일을
하여 인류애를 실천하는 것이 동기진同其塵이다.”
노자의 <도덕경>을 각자 제 지식의 잣대를 들이대
어 대략 글 풀이를 통해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이
야기하며 다양한 해설서를 세상에 제시한 이들이 적
지 않다. <도덕경>을 직접 설한 노자가 아니고서야 어
찌 이것이 정답이고 이러제대로 이해하여 풀이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제 부족한 소견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또한 노자의 참뜻을 이해하기 위한 오랜 세월의 천
착穿鑿과 철저한 공부, 깊은 사유思惟의 침잠沈潛 없이
한문을 많이 안다거나 다른 폭넓은 지식을 갖추었다
는 점을 근거로 하여 노자 <도덕경>을 참으로 쉽게
접근해 너무나도 함부로 말하고 글 쓰는 이들도 적
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뿐이다.
여러 가지를 감안할 때 다석 선생의 노자 <도덕경>
해설은 자구字句 해석의 옳고 그름을 초월해 노자 사
상의 핵심을 간파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철학으로
승화시켜 차원 높은 법문法門을 들려준다는 점에서
다른 학자들과는 판이하게 구별되는 진가를 보인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날마다 지식을 보태는 것이
고(爲學日益), 도를 한다는 것은 날마다 머릿속에 있
는 죽은 지식들을 덜어내는 것이다(爲道日損). 덜어
내고 또 덜어내어 더 이상 덜어낼 것이 없을 때(損之
又損 以至於無爲) 그 어떤 인위 인공적 노력을 하지
않아도 뜻한 바대로 되지 않음이 없게 된다(無爲而
無不爲)”라고 설파한 <도덕경> 제48장의 구절은 일
반적 시각으로 볼 때 채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
각되겠지만 오히려 비우는 것이 진정으로 도리道理에
합치된다는 점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어떤 훌륭한 그릇이라 해도 쓰임새에 맞추어 만들
기 때문에 용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그릇
의 불변의 속성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노자는 세상
의 모든 그릇이 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렇지 않은 단
하나의 그릇이 있으니 그 그릇을 발견해 내어 어떤
곳에 활용해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
이다.
“채워도, 채워도 결코 가득 차지 않는 그릇, 그래
서 써도, 써도 다함이 없어 무궁무진한 용도로 광범
위하게 쓰이는 그릇이 바로 ‘도’라고 하는 그릇이다.”
노자의 이 이야기를 의학적 관점에서 부연 설명한
다면 대략 이런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사람 생
명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참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도는 바로 세상 사람들의 죽어가는 생명을 구
할 수 있는 묘약妙藥, 신약神藥, 영약靈藥이라 할 것이
다. 이 도라고 불리는 그릇을 제대로 활용해 도라고
불리는 약, 즉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약을 달여 내어
각종 암, 난치병, 괴질로 인해 비명非命에 죽을 위기의
환자들에게 제공할 경우 그들은 결코 비명에 목숨
을 마치지 않고 감로수甘露水 함유된 그 묘약, 신약, 영
약의 생기生氣로 인해 생명력을 되찾아 건강하게 천
수天壽를 다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